큰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제가 잠시 2년 정도 가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안 살림하랴, 남편 수발하랴, 아이들 건사하랴, 팔 물건을 도매시장에서 떼 오랴, 몸이 열 개라도 바빳습니다. 일단 제가 장사를 하니까 서랍이든 어디든 돈이 나돌아다녔는데도 단 한번도 우리 아들들이 몰래 돈을 꺼내거나 만져본 적이 없는 청결한 양심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일생을 정직하게 한 우물 파며 살아오신 제 아버지를 닮아 아들들이 그렇게 곱고 정직하게 잘 자랐습니다.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무한테 배우지 않고도 제 마음대로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화가인 언니가 초등학교 때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의 색감이 밝고 좋다고 했어요.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1학년때는반에서 1등해서 장학금을 타기도 했습니다.
중1 마치고 이민을 데리고 왔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민온 어린 아들을 위로한답시고 세월만 보내면 영어는 저절로 된다고 하더랍니다. 제 귀에 편안한 남의 말 듣기를 좋아하였던 어린 아들이 그 말을 귀담아 듣고 너무 안심했나 봅니다. 그 뒤로 대학가려고 택한 전공이 에니메이션. 제 속물적 생각은 차라리 다른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좀 더 편하고 수입도 괜찮은 직장을 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둘째 아들의 순종적인 성품이 개성적인 아트와는 좀 안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학교 다닐 때 부모 속을 썩이고 건들건들하던 사람들이 요새 만나보면 자기 분야에서 뛰어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다 듭니다. 아트할 아들은 좀 튀게 내버려 둬야 했던 게 아닌가. 아들은 중간 정도의 에니메이션 회사에서 벌써 7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옛날 한창 때의 꿈은 에니메이션 영화 감독이었는데 요새는 평범한 애니메이터로 내려앉았나 모양입니다. 매사에 느긋합니다.
저번에 다녔던 에니메이션 회사가 영세한지 책정한 봉급도 회사가 어렵다면서 제대로 주지 않다가 망해 먹다가. 천 만원 정도의 돈을 떼이고 말았답니다. 그래도 불굴의 우리 아들은 여전히 에니메이션 회사에 올인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밥벌이를 제대로 하게 되면 노숙자 밥해 주는 봉사는 꼭 하고 싶다고 합니다.
제가 작은 아들에게 뉴질랜드에 와서 카페를 해 보면 어떠냐, 뉴질랜드에 돌아와서 고등학교 아트선생을 해보면 어떠냐, 별별 소리를 다해 봅니다만. 마이동풍. 동남풍아 불어라 그렇습니다. 그 쥐꼬리 박봉에 예사로 밤새우고 해도, 아들은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돈이 적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왜 에니메이션에 몰입하는지를 물어본다면 자기가 좋아하니까 하고 하겠지요.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애니메이션 직장에 다니고 있는 아들은 바둑이 좋다고 바둑판을 만들겠다고 나선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아직 현실에 쫄지도 쩔지도 않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탈출을 꿈꾸고 직업의 굴레를 벗어나 강점과 기질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꿈꿉니다만. 당장 회사에서 쫒겨나는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미래가 불확실하다 하고 부양해야할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도약을 꿈꿉니다. 작은 아들은 그런 모험에 관심없이 그냥 자기 맡은 일을 오늘도 열심히 합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도 조금만 더 힘을 기울이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갖습니다. 어릴 때 돈에 대해서 욕심이 없어서 놀라웠던 것처럼 지금도 돈이 적으면 적은 대로 안 쓰고 불편함 없이 밝게 잘 삽니다. 며느리도 그런 점은 비슷해 보이고 절대 남편에게 돈문제로 바가지 안 긁습니다.
큰 아들은 항상심을 갖고 사는 동생에 대해 성실하고 만족하고 사니 그거야말로 행복하지 않냐면서 좋게 이야기 합니다. 그림을 열심히 그려 게임회사로 옮기게 되면 나은 근무환경과 봉급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니, 지금 회사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역부족인 모양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사니 좋냐고 물으면 분명히 좋다고 할 것입니다.
둘째 아들의 나이가 더 들어 열정이 피곤을 못 이기는 나이가 되면 어쩌나 싶습니다. 지금 미처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중에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어도 자리를 박차고 떠나지 않고 항상 성실한 아들에게 꿈을 이루는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저번에 살던 집은 방음장치가 잘 되서 전혀 이웃의 소리가 안 들렸는데요. 그 집에서 내가 우리 텃밭에 서 있으면 한국 사람이 사는 뒷집 마당에서 도란도란 한국말이 들려올 때가 있었어요. 한국말이 도란도란 들려오면 내가 사는 이 곳이 외국이란 느낌이 덜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소통을 느꼈어요. 한국에서 살 때, 온갖 시끄러운 소리에 치여 살았던 제가, 한국을 떠난 이후에는 소리를 그리워하게 되더라구요.
이 집은 나무로 지어진 집입니다. 뒷 집에서 자주 벌리는 파티의 음악소리, 옆 집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와 크게 웃는 소리가 다 들립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또 다른 집 아빠와 아들이 밤중에도 공 던지기 연습하는 소리가 바로 옆 집에서 나는 것처럼 가까이 들렸어요. 나무 벽 사이로 집안에 바람이 왔다 갔다 하듯이 소리도 왔다갔다 합니다. 나무집에 사니까 입맛이 좋아지는 것을 처음 느꼈어요.
우리 동네는 개울이 흐르고 또 작은 숲처럼 나무들이 빽빽히 심겨진 곳도 있고 참 조용한 곳이지만 이웃집에서 나는 작은 소리는 끊임없이 들립니다. 얼마 전에는 개울에서 청둥오리 한 마리가 기어나와 우리 마당으로 산보차 왔더랬습니다. 신기했어요.
조용한 이곳에서 저는 시끌벅적한 이웃집에서 품어나오는 그 소리들이 참 좋습니다. 하늘과 구름과 나무숲에 둘러싸여 품어내는 적당히 시끄러운 그 소리들이 사람사는 맛이 나게하고 좋습니다. 총제적으로 내 귀에 들리는 이웃집 시끄러운 소리가 이태리 가곡의 아름다운 아리아처럼 좋게 여겨집니다.
손녀 둘은 뒷마당에서 놀다보면 옆 집에서 거의 매일 노래가 들리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니 "할머니, 저 집은 매일 파티하는가봐요" "저 집 아빠는 일하러 안 가도 되나요. 저 집 엄마는 공부하러도 안 가고 매일 파티만 하네요"라며 자매가 서로 꽁창꽁창거리는 말을 듣고 제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답니다.
씨앗을 심은 지가 얼마 안 되어 아직 스트로폴 상자 텃밭에서는 새싹 정도가 조밀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욕심 많은 제가 씨앗을 얼마나 많이 뿌렸는지요. 빼꼭히 머리를 내밀고 올라온 새싹들을 넣고 요새 저녁이면 비빔밥을 비벼 먹습니다. 그냥 대충 콩나물에다 양배추 나물과 누가 갖다준 깻잎 같은 쌈채소를 집어넣고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습니다. 나물을 다 넣어서 비벼 먹으니 양이 많지만 배를 두드리며 행복하게 먹습니다.
아들도 퇴근하고 오니 배가 출출할 것이고, 며느리는 아침 일찍 가서 풀타임으로 영어를 공부하니 집에 오면 지쳐서 더 배가 고프겠지요. 매일 저녁은 비빔밥으로 온 식구가 쓱싹쓱싹 비벼 먹습니다. 텃밭에서 자란 야채로 반찬을 만들면 저들이 머금은 햇볕과 물과 상쾌한 공기가 지금 내 몸에 들어오는 느낌이에요.
호박꽃이 지고나자 그 자리에 손가락 호박이 하나 달려 있어서 손녀들에게 보였주었습니다. "하아, 너무 예뻐요"라고 꽃이 지고나서 생명의 나옴을 신기하게 여깁니다. 소멸과 부활이 자연계의 이치인데요. 아직 가지는 어려 열매가 안 달렸지만 잎 주위가 매력적인 보라로 변해갑니다. 호박 나물과 가지 나물이 들어가면 더 색감이 환상적이고 맛좋은 비빔밥이 되겠지요.
우리가 미국에서 정리하고 돌아와 아들네 식구들과 합쳐 살아온 지 벌써 8개월이 되어갑니다. 그냥 한 달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제 인생 자체가 생각해 보면 통틀어 한 사나흘 정도 되는 것 같이 느껴져요. 아들네 식구와 한 집에서 지지고 볶고 같이 살며 느끼는 점은 헤어져 살 때보다 우리 영혼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에요.
머리, 손, 발의 지체가 모여 몸을 이루듯이. 서로가 지체는 달라도 마음자리를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얼마나 기쁜가, 얼마나 아픈가, 얼마나 괴로운가...의 마음자리가 서로 얼굴만 쳐다봐도 알아차립니다. 식구의 마음이 강물 흐르듯 맑게 흐릅니다. 가족이 위로가 되고 좋습니다.
급류가 흘러 소통이 막혀도 알고 다 압니다. 강물이 흘러가듯 사랑이 흘러가니 온 식구 내공이 깊어가고 든든하여 희망이 생기고 삶에서 생기는 작은 고통을 너끈히 이길 수 있겠습니다.
같이 살면서 느끼는 그런 소통의 편리함이 좋습니다. 식구 각자가 모든 순간의 알아차림에 말이 필요없이 눈으로도 충분히 공감한다는 것.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물론 정중한 설명의 말이 필요하겠지만요. 서로가 다름도 알고, 서로가 도와줘야 할 부분들이 있고, 서로가 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변화를 위한 거점이 되고 희망을 품게 합니다. 고통스럽지만 갈등을 거쳐야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오늘 비빕밥을 비벼 먹으면서 그런 생각이 제 뱃 속에 가득 들어왔습니다.
직접 작은 텃밭을 일구어 채소를 키우는 사람은 본질적인 행복이 무엇인가를 터득해 나가는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텃밭에 가을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세월이 빠릅니다.
"영적인 삶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타인들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거나 선행을 베풀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한다면 그건 그를 단순한 대상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을 대단히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과는 무관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다."
-토마스 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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